사찰 둘러보기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면서 한국인에게 불교는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는 것 같다. 회사에서 관리하는 인사기록부 등에 기재하는 종교 란에 뭐라고 쓸게 없으면 그냥 불교라고 적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불교는 종교적인 색깔이 짙기도 하지만 또, 어떤 생각의 근간을 세울 때 불교 경전의 내용을 판단의 근거로 삼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철학이라고 할 수도 있고 가치관의 기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윤달이 든 해나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삼사순례라고 하면서 이른바 세 절 밟기에 나서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때는 천주교나 무교나 할 것 없이 절을 찾아 절에서 주는 밥을 먹기도 하고 사찰을 둘러보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절은 종교적인 장소라고 보기보다는 문화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사후에 천국을 이야기하지만 불교에서는 윤회를 이야기 한다. 이토록 한국 사람들의 생활주변에 많이 스며들어 있는 불교와 관련하여 사찰에 가면 볼 수 있는 각종 문이나 탑, 전각 등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면 그만큼 사찰의 모습이 자세하게 보일 것이라 생각이 들어 사찰에 있는 구조물이나 건축에 대하여 정리를 해 본다.
인도에 있어서 최초의 절은 죽림정사인데 중인도 마갈타 국의 왕사성에 위치하고 부처님과 제자들이 수행하고 중생을 교화하던 장소다. 이러한 정사나 사찰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는 부처님이 탄생하고 성불하고 설법하고 열반하신 모든 곳을 절이라고 한다. 따라서 부처님의 제자인 불자들이 부처님을 존경하는 마음을 간직하기 위해서 부처님을 형상화 해 일정한 장소에 봉안하고 스님들께 설법을 듣고 예불을 올리는 곳을 절이라고 한다.
부처님은 처음에는 나무 밑이나 동굴, 심지어는 시체를 앞에 두고 숲에서 수행을 했고 떠돌이 생활 즉, 만행(萬行)을 떠나기도 했다. 부처님이 다섯 수행자를 대상으로 교화(초전법륜)를 하고나서 만행을 수행하던 중 마갈타 국의 빔비사라 왕과 베데히 왕비가 불교에 귀의를 하게 된다. 그 후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이 커지게 되고, 부처님이 거처할 곳이 없어 숲에서 수행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던 중 죽림의 소유주인 가란타 장자에게 죽림을 희사 받아 절을 짓게 된다. 그곳이 최초의 절인 죽림정사이다.
정사(精舍)라는 말은 범어로 상가라마 또는 승가람마(僧伽藍摩)라고 했는데 가람(伽藍)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했다. 즉, 가람이라는 말은 승려가 살면서 불도를 닦는 곳으로 절을 의미한다. 부여 등지에 가서 관광해설사가 하는 말을 듣다보면 백제의 사찰은 보통 1탑 1금당 1강당의 가람배치를 이루고 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데 가람배치는 바로 절의 배치를 이야기하는 말이다.
승가람마(僧伽藍摩)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오면서 사(寺)가 되었는데 사(寺)는 원래 공공기관을 뜻했다. 인도에서 경전을 백마에 싣고 중국에 온 스님이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외무부 소속 관아인 홍려사(鴻臚寺)에 머물게 했는데 마땅히 다른 곳에 머물 곳도 없어 계속 거처로 삼게 되었는데 후에 경전을 백마에 싣고 왔다고 해서 백마사(白馬寺)로 이름을 바꿨다. 이것이 중국에서 사찰의 효시가 되었고 이후 스님이 거처하는 곳을 사(寺)라고 부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에 전진왕 부견이 순도화상을 파견하고 동진에서는 아도화상을 고구려로 파견하는데 이들을 모실 곳이 없어 절을 짓게 된다. 순도화상을 위해서는 성문사(초문사)를 아도화상을 위해서는 이불란사를 지었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가람이라고 할 수 있다.
신라에서는 19대 눌지왕 때 묵호자(墨胡子)가 모례(毛禮)라는 사람의 집에 머물면서 몰래 불교를 전했다. 고구려나 백제에서는 왕실에서 불교를 수용을 했는데 신라에서는 왕실이 수용하기 전에 민간신앙으로 전래가 되었다. 모례라는 원래 털례라고 발음되었는데 한자로 적은 것이 모례가 되었다. 이 털례의 집에 불상을 모셔놓고 많은 불자들이 공부를 했는데 털례의 집이 나중에 가람이 된다. 이후에도 가람을 털례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발음이 변하면서 절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백제불교의 전래는 전해진 경로와 최초도래지가 불확실하였으나 인도의 명승 “마라난타 존자”가 영광의 법성포로 들어와 불법을 전하고 불갑사를 개창하여 백제 불교가 시작되었다고 구전되어 왔다. 1998년 영광군의 학술고증(동국대학교)을 통하여 영광땅이 백제불교의 최초 도래지라는 사실을 밝혀내게 되었다. 법성포 좌우두는 인도승 마라난타가 A.D 384년에 중국 동진을 거쳐 백제에 불교를 전하면서 최초로 발을 디딘 곳으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관광명소로 개발하고 있다. 법성포의 법(法)은 불교를, 성(聖)은 성인인 마라난타를 가리킨다.
사찰을 찾았을 때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문이 일주문이다. 일주문을 지나야 부처님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인 불국토에 들어서게 된다. 일주문은 기둥이 한 줄로 나란히 늘어서 있다고 해서 일주문이라고 하는데, 모든 세속적 번뇌를 버리고 불심을 하나로 모아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일심一心, 즉 하나의 마음을 의미한다. 사찰이 있는 산의 이름과 절의 이름을 함께 적은 현판을 달고 있으며 큰 사찰에는 양쪽 기둥에 사찰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주련을 단 곳도 있다. 일주문은 속세와 불보살 세계의 경계가 된다.
일주문을 지나면 천왕문을 만나게 되는데 고대 인도의 다른 종교의 신들이 귀의해 불교의 수호신이 된 사천왕을 모신 문이다.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며 불법을 수호하고 있다.
먼저 지국천왕은 동방을 수호하는 천왕으로 온 몸의 색깔은 동방을 상징하는 청색으로 칠해져 있고, 왼손에는 칼을 쥐고 오른손은 주먹을 쥐고 있거나 허리를 받치고 있기도 하며, 보석을 손바닥에 올린 형상을 하고 있기도 하다. 증장천왕은 남쪽을 수호하는 천왕으로 남쪽을 상징하는 적색을 칠하고 있고 불타는 눈으로 왼손 엄지와 중지로 여의주를 받치고 오른손은 용을 움켜지고 있다. 광목천왕은 서방을 수호하는 천왕으로 서방을 상징하는 백색을 칠하고 있으며, 입을 크게 벌리고 부릅뜬 눈을 하고 있다. 삼지창 또는 보탑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다문천왕은 북쪽을 수호하는 천왕으로 흑색으로 칠해져 있다. 비파를 들고 비파줄을 튕기는 모습을 하고 있다.
천왕문을 지나면 불이문을 만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수미산을 중심으로 불교의 세계관을 펼치고 있는데 수미산의 정상에는 제석천왕이 다스리는 도리천이라는 곳이 있으며, 도리천에 불이문이 있는데 해탈의 경지를 상징한다. 그래서 불이문을 해탈문이라고도 한다.
불이문을 지나면 탑을 만나게 된다. 탑은 부처님 사리를 봉안하는 것으로 인도에서는 사리를 봉안한 묘분으로 스투파가 있고 중국에는 벽돌로 쌓은 전각이 있는데,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것은 대부분 석탑이며 목탑은 전쟁이 많았기 때문에 거의 소실되었다. 탑돌이를 하면서 마음을 정갈하게 한다.
탑을 보고나면 절마다 위치는 다르나 대부분 주변에서 범종각 또는 범종루를 볼 수 있다. 범종은 천상의 세계 범천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울리는 종이며, 범종각은 불교를 수호하는 범천의 종을 달아 놓은 집이다.
2층 누각으로 만들어 2층에 4물을 비치하고 있는 건물은 범종루라고 하는데, 예불을 올릴 때 4물을 사용하고 있다. 범종은 지옥중생을 제도하며, 법고는 축생을 제도하고, 구름모양의 쇠로 된 운판은 날짐승을, 목어는 어류를 제도하기 위한 것이다. 사찰에 따라서 범종각을 따로 지어 별도로 범종만 봉안한 경우도 있다.
부석사 범종루에는 법고, 목어, 운판을 걸어 놓았고 범종은 따로 범종각을 지어 봉안하고 있다. 부석사 범종루는 올라가면서 보면 봉황산부석사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데 팔작지붕의 2층 구조로 되어 있고, 뒤쪽인 안양루에서 보면 맞배지붕의 1층 구조로 되어 있다. 안양루도 안양문으로 들어가는 곳에서 보면 2층 구조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는데 무량수전에서 보면 1층 구조로 보이는 안양루를 볼 수 있다. 산의 지형에 맞춰서 건축한 것으로 보인다. 무량수전에서 보면 안양루는 정남향, 그리고 안양루 아래서부터 범종루, 천왕문은 서남향으로 축이 30도 정도 굴절되어있다. 이 또한 지형에 순응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안양은 극락을 이르는 말로 안양문을 지나면 만나는 무량수전이 극락이다. 무량수전은 기둥 위에 공포를 하나만 장식한 주심포 양식이고 기둥은 가운데를 불룩하게 만들어 안정감을 준 배흘림 양식으로 유명하다. 안양루는 기둥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의 창방에도 공포를 설치하여 건물을 화려하게 보이도록 한 건축양식을 보여주는데, 이를 다포 양식이라고 한다. 기둥만으로는 지붕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무게를 분산시키기 위해 지붕과 기둥 사이에 설치하는 것을 공포라고 하는데, 배흘림기둥 역시 지붕의 무게를 안정감 있게 견뎌내도록 설계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지붕의 추녀를 받치는 기둥인 활주 또한 지붕의 무게를 견디기 위한 것이다. 안양루의 공포와 공포 사이의 공간이 무량수전 벽의 노란색과 일치할 때 노란색 부처의 형상을 볼 수 있는데 이를 공포불이라고 한다.
절의 본당으로 본존불을 모신 건물을 불전이라고 하는데 오행으로 중앙을 상징하는 황색 또는 금부처님을 상징하여 고려 초까지는 불전을 금당으로 불렀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후 법당(法堂)이라는 명칭이 쓰였는데, 법당이라는 의미 속에는 영원한 자유와 진리로 충만한 법의 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역시 부처님을 모신 전각의 통칭이다. 전에는 불보살을 모시고 각에는 불교에 수용된 산신, 칠성, 용왕 등을 모신다. 둘을 합하여 전각이라고 한다.
대웅전(대웅보전)에는 대웅이라는 글자대로 위대한 영웅 석가모니를 모시고 있는데 법당 내부구조는 상단, 중단, 하단, 영단으로 구분한다. 상단에는 부처와 보살(석가모니,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중단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선신을 모신 곳으로 제석천, 사천왕 등 8보 신장 등을 모시고, 영단에는 영가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하단에는 칠성, 산신 등을 모신다. 후불탱화로 아미타여래 탱화를 배치하기도 한다.
영산전은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영산회상을 재현한 곳으로 인도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는 광경을 묘사해서 부처님과 10대 제자, 16 나한, 오백 나한을 모시기도 하고, 영산회상도로 부처님 생애를 여덟 단계로 묘사한 팔상도를 봉안하기도 하며, 제화갈라보살, 석가모니부처, 미륵부처를 모시기도 한다. 즉 과거 현재 미래를 상징하며 팔상전이라고도 한다. 팔상전은 법주사, 쌍계사, 운흥사, 선암사, 범어사, 보경사 등이 유명하다.
대적광전(대광명전)은 비로자나부처를 모시는 불전이다. 두루 비추는 밝은 빛, 고요한 빛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 비로자나부처만 모신 경우에는 대적광전, 대광명전 등으로 부르며 사찰에 대웅전이 있는 경우에는 주불이 아니므로 비로전이라고 한다. 대적광전은 해인사가 유명하다.
극락보전(무량수전)에는 서방정토에 머물면서 중생의 극락왕생을 인도하는 아미타부처를 주불로 모신다. 석가모니 부처가 있는 경우에는 미타전, 아미타전 등으로 부른다. 대표적인 극락전은 천은사, 무위사 등이며 무량수전은 부석사가 유명하다.
약사전은 모든 중생의 병을 고치는 부처인 약사여래부처를 모시는 불전이다. 약병, 약함, 약단지를 지니고 있으며, 통도사, 송광사, 관룡사, 고운사 등에 있다.
미륵전에는 미래에 출현할 미륵불이나 미륵보살님을 주불로 모신다. 미륵전을 본전으로 삼는 사찰은 대개 법상종(法相宗)의 맥을 전승한 사찰이다. 미륵부처님이 용화수 아래 성도해 용화세계를 이룩할 것을 의미하여 용화전이라고도 한다. 어떠한 두려움도 없애준다는 의미로 오른손 끝을 위로 향하게 하여 손바닥을 밖으로 보이게 하는 수인을 하고 있다. 남원사, 범어사, 금산사, 무위사 등에 있다.
천불전에는 깨달음을 얻은 이(부처)가 천불은 된다는 의미로 천불을 모셔 놓았다.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님을 천 분씩 모셔 놓은 불전이다.
원통전은 중생구제를 위해 대자대비의 원력으로 대중들에게 가장 친근한 보살님인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이다. 대비전, 보타전이라고도 한다. 주불전일 때는 원통전, 원통보전이라고 하고, 대웅전이 있고 부속전각일 경우에는 관음전이라고 한다. 관음전은 송광사, 범어사, 원통전은 통도사, 법주사, 선암사 등이 유명하다.
지장전은 지옥중생 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지장보살을 모신 곳이고 염라대왕을 위시해서 지옥의 10대왕 즉, 지옥시왕상을 함께 봉안하기도 하며 명부전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으면 3일간 이승에서 머물다가 명부사자(冥府使者)의 인도로 명부로 간다고 믿는데, 이때 명부에서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열 명의 왕이 지옥시왕이다. 진광대왕(秦廣大王)·초강대왕(初江)·송제대왕(宋帝)·오관대왕(五官)·염라대왕(閻羅)·변성대왕(變成)·태산대왕(泰山)·평등대왕(平等)·도시대왕(都市)·오도전륜대왕(五道轉輪, 혹은 전륜대왕)의 순서다. 머리에 경전(금강경)을 이고 있는 왕이 지옥의 다섯 번째 왕인 염라대왕이다. 평소에 금강경을 많아 독성하면 염라대왕에게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죽은 자는 시왕 중 7명의 대왕에게 순서대로 각각 7일씩 49일 동안 심판을 받는다. 그러나 살면서 죄업을 많이 지은 자는 49일 이후 3명의 대왕에게 다시 심판을 받는데, 죽은 후 100일이 되는 날은 제8 평등대왕, 그리고 1년이 되는 날에는 제9 도시대왕, 3년째에는 제10 오도전륜대왕의 심판을 받아 총 3년의 기간 동안 명부시왕의 심판을 받는다. 부모가 상을 당하면 3년 상을 거상(居喪)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응진전은 부처님 제자를 모신 곳으로, 응진이란 존경받을 만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나한전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부처의 제자 중에서 정법을 지키기로 맹세한 16나한이나 경전 결집에 참여한 오백 나한을 모시기도 한다. 나한들은 아라한의 경지에는 도달했지만 불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성자들이다. 또한, 미륵부처님이 오실 때까지 중생들을 제도하라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숙의를 받은 분들이어서 민간 설화에 많이 등장한다. 나한전은 금산사, 옥천사, 기림사, 송광사 등이 유명하다. 오백 분의 나한을 거꾸로 나이 수만큼 세어보면 거기에 해당되는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조사전은 사찰을 창건한 스님이나 존경받는 스님의 영정 또는 위패를 모신 곳으로 조당, 조사당, 국사전이라고도 한다. 송광사 국사전, 해인사 조사전, 신륵사 조사당 등이 유명하다.
각에는 삼성각, 장경각(부처님 가르침을 담은 장경들이 모셔진 누각) 등이 있다. 칠성, 독성, 산신을 함께 모셔 놓았을 때 삼성각이라고 한다. 대체로 삼신을 같이 모시는데 따로 모시기도 한다. 나누어서 모실 때는 각각 칠성각, 독성각, 산신각이라 한다.
칠성은 북두칠성을 일컫는데 사찰에 칠성을 모신 까닭은 중국의 도교 사상이 불교와 융합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보통 칠성이 부처님으로 화한 경우로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라고 부르며 불교로 받아들인 것이다. 손에는 금륜을 가지고 있으며, 일광, 월광보살님을 협시로 배치하고 있다.
독성각에는 나반존자님이 모셔져 있다. 나반존자님은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으며 다만, 16나한 중의 한 분이 아닌가 하고 전해져 오고 있다. 나반존자에게 기도하면 소원성취 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있다.
산신각은 칠성각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발달한 토속신인 산신과 호랑이를 모시고 있다. 산신을 외호신중外護神衆이라고 생각했다. 민간신앙에서는 산신처럼 모셨던 호랑이를 산군山君이라고 하며 산신처럼 모셨다.
따라서 삼성각은 불교가 수용되는 과정에서 토착신앙이나 민간신앙과 융합하며 빚어진 변용이다. 이러한 변용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흔히 목격되는데, 이질적인 신앙을 불교로 포용하여 보다 높은 차원으로 유도한다는 데에 의의가 있으나, 자칫 기복 위주의 주술적 신앙으로 불교의 본질을 왜곡시킬 우려와 폐단도 함께 가지고 있다.
사찰을 방문했을 때 일주문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문과 탑, 전각들의 의미를 알고 대하게 되면 보다 알찬 사찰기행이 될 것 같다. 지금까지 예사로 보았던 불전이나 탑, 여러 가지 문들에 대하여 아는 만큼 더 자세히 들여다 볼 것 같다. 산에서 부는 바람과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 아득하게 들려오는 풍경소리가 어울리면서 절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한적한 가을날이나, 바람 부는 날, 비가 내리는 날에 천천히 걸으며 사찰의 의미를 곱씹으며 찾을 때마다 새롭게 알아가는 재미 또한 기분 좋은 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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