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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초대

바람의 딸 / 김사이

by 1004들꽃 2018. 1. 22.


바람의 딸 / 김사이



어느 날 학교 파하고 돌아오니

안방에 아버지를 닮은 낯선 할머니가 앉아 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친할머니라 한다

등허리로부터 소름꽃이 토도독 피어오르고

놀라 엄마, 엄마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평온한 시간이 지루했던 모양이다

푸른 태양이 숨어버리고

그렇게 할머니와 이상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칼바람보다 더 냉랭한 말투

쳐다보는 눈빛은 얼마나 매서웠던지

엄마가 늘 쓰는 욕에도 단련되지 못했거늘

할머니는 욕에 가시를 박았는지

들을 때마다 가슴이 쩍쩍 갈라지는 것이다

잡년 개 같은 년 씨알머리 읍는 년아

왜 그랬을까 모를 일이었다

아랫집 할머니처럼 우리 강아지 우리 강아지 하며

보듬어주길 바란 적 없는데

부지깽이 들고 쫓아다니는 것이 화풀이란 것쯤 안다

아버지는 소나기처럼 한 번씩 들이쳤다 가고

어머니의 외출은 기약이 없어졌다

치통보다 곤혹스러운 시간이 흐른 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한동안 불편하고 따가웠던 바람의 정체에 대해,

어머니가 처와 자식 딸린 남자를 사랑한 것을

내가 바람의 딸인 것을 이해하는 순간

몸 깊은 곳으로부터 꽃망울이 터졌다

첫 생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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