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쪽으로 갈게(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신경숙)
윤, 명서, 미루, 단이. 네 사람을 둘러싼, 아니 그들 앞으로 달려드는 현실을 다만 겪어나갈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들의 아야기이다. 많은 사람들이 명동성당에 들어가 장기 농성에 들어가곤 했던 그 시절.
자신의 스무 살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문장들을 읽는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가슴에서 솟아나는 그 무엇인가를 느끼게 될 것이다. 어쩌면 아득하기도 할 것이고 어쩌면 그 많은 세월들이 어제처럼 느껴질 만큼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가슴을 쓸어내릴 것이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는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항상 어느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마련이다. 최근에야 과거와 미래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자 애쓰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지나간 일들의 일부분은 유령처럼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 떠나지도 못하고 머물지도 못하는 것들은 실체가 없는 것들이지만 실체가 있는 것보다 오히려 더 절박하게 다가왔다가 멀어져가는 것만 같았다.
스무 살 시절. 꼭 할 일이 있을 것 같아서 가로등 불빛이 파르스름하게 떨리던 거리를 혼자서 걸었던 쓸쓸한 나그네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기억은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의 생각대로 기억되어지는 속성이 있어서 현재 떠올려지는 그날의 그 밤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로등 아래에서 파르스름하게 빛나던 눈동자도 사라졌고 다만 그림자만 나를 따라와 지금까지 동거하고 있다. 생각이 바뀌고 마음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는 내 모든 생을 따라 묵묵히 따라왔던 그림자는 아직도 아무 말이 없다. 그리고 내 모든 생을 끝내는 그날까지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말하지 못하는 그는 나이고, 나는 그이기 때문이다.
부치지 못할 것 같아 새벽이슬을 맞으며 우체통을 찾는 사람
10년 만에 걸려온 전화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사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안부만 물어보는 사람
돌아서 가는 사람에게 손 한번 잡아주지 않는 사람
눈을 마주치면 다시 그 날로 돌아갈까 봐 먼 산만 바라보는 사람
윤과 명서의 8년간의 단절, 그리고 윤과 단이의 관계에서 대충 이런 식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명서 때문에 단이를 밀어놓기 위해서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라는 단이의 말을 의도적으로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답장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수없이 편지를 썼던 단이는 끝내 답장을 받지 못했다. 윤은 왜 답장을 쓰지 않았던 것일까? 그가 죽은 후에야 편지를 쓰지만 부치지 못할 편지였고, 이루지 못할 약속까지도 편지에 썼던 것은 다만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죄책감, 의문의 죽음, 그리움들이 모두 합해져서 털어내지 못할 무게로 눌렀을 그것들은 미루의 죽음과 함께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 들어갔을 것이다.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까지 윤과 명서의 재회는 불확실하게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와 함께 이어져 가는 갈색노트는 다시 희망을 찾게 해 준다. 몇 번을 읽고 또 읽었지만 발견하지 못했던 문장을 노트의 맨 뒷장에서 발견했다. “언젠가는 정윤과 함께 늙고 싶다.” 라는 명서의 독백에 “내가 그쪽으로 갈게.” 라고 써 넣으면서 갈색노트를 완성시킨다. 노트는 완성되었지만 윤과 명서의 사랑은 읽는 사람들의 마음과 같이 순탄한 길을 갈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신경숙은 속으로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쪽으로 갈까라고 묻지 않고, 내가 그쪽으로 갈게라는 문장으로 끝맺은 소설은 영원한 사랑을 예고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단지 신경숙이라는 작가의 손끝에 매어 있을 뿐이다.
아직도 “엄마를 부탁해”에 등장하는 엄마를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다시 내 속에서 엄마를 부활시킨다. 아파서 괴로워하는 자신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딸을 서울로 보내는 엄마. 일주일에 한 번씩 약을 타서 우체국에서 부쳐주던 버릇은 엄마가 죽고 나서도 계속되어서 약을 타던 창구에 버릇처럼 앉아있었던 윤은 기차를 타고 시골집으로 와 버린다. “엄마, 또 와 버렸어.”
“엄마를 부탁해”에서 등장하는 엄마와 “같은 엄마”가 아닌지 착각할 정도다. 옹알이를 하는 해맑은 아이였고 냇가로 들로 뛰어다니던 꿈 많던 소녀였고 사춘기를 벗어나지도 않은 나이에 시집가기 싫어 엄마에게 떼를 쓰던 엄마의 딸이었던 엄마를 다시 보는 듯했다.
어쨌든 소설은 끝날 수밖에 없지만 생의 이야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 지나간 세월에 갇혀서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내가 그쪽으로 갈게라는 문장은 긴 여운으로 남았다. 사람과의 만남에서 내가 그쪽으로 갈게 보다는 이쪽으로 오라는 말을 더 많이 할 것이다. 이제는 서로 내가 그쪽으로 갈게라고 말하는 것은 어떨지.
'책을 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교/박범신 (0) | 2010.08.02 |
---|---|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0) | 2010.07.09 |
퍼온 글(칼의 노래) (0) | 2010.05.31 |
일기일회/법정 (0) | 2010.05.10 |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김숨 (0) | 2009.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