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위의 그 엄숙한 위엄을 한 번 더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바다를 가슴으로 안고 등으로는 다랭이 논을 업고 긴 세월 동안
말없이 지켜보았던 침묵의 바위 위를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바위 위에 무슨 영양분이 있었는지 한 그루 소나무를 잉태하여
바람과 구름과 강열한 햇살을 견디며 키워냈다
진정 누군가가 심어 놓지는 않았을 것이고 스스로 태어나 스스로 자라는 소나무를 보며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먼 바다를 지나 다시 섬들이 둘러 서 있고 그 섬들을 지나면 다시 바다가 펼쳐진다.
먼 바다에서 저 섬들을 지나고 넘어서 이곳 선구마을까지
먼 바다의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다만 말없이 구름과 바람과 햇살의 이야기를 소근거릴 뿐이지만
그 이야기는 귀로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
흩어진 섬들 사이로 배들이 지나가는데
흰 꼬리를 이끌며 한없이 천천히 가는 것 같았는데
언제 지나갔는지 산길을 걷다 돌아보면
배는 온데간데 없고 다시 새로운 배들이 뒤를 따라 이어진다
돌에 남겨진 자취는 무엇의 흔적일까
먼 그리움의 흔적일까
잊지 말라는 표식일까
산벚나무의 가지가지에는 아직도 떨어지지 않은 꽃들이
서글픈 얼굴을 하고 있다.
인생무상을 알려주는 것들이 이보다 선명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일들을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돌담은 그 용도를 알려주지 않고
다만 말없는 말을 전하려 하는가 보다.
바다 동물을 닮은 이 문양도
무엇인가를 알려 주기 위해
그 한많은 세월을 견디며 있었던 것일까
다랭이 마을로 내려와 노선버스를 타고 선구마을로 갈까 생각했는데
온통 사람들과 차들로 붐비는 곳에서 버스를 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천천히 그렇게 걸어가는 수밖에..
길 옆에는 온통 펜션들로 가득찼고
그것도 모자라 다랭이 논이나 밭은 펜션으로 한창 거듭나고 있었다.
잘 하고 있는 일인지, 아닌지, 유채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말이 없는데
가까워지는 석양을 먼저 끌어당긴 바다는 아직 익지 않아
희고 푸른 빛깔로 잔잔하다
섬들에 둘러싸여 호수같은 바다는
긴 세월 동안 고기를 잡으며 생을 이어왔던 어부들의 한을 품고 있는 것일까.
포장도로 약 5km를 걸어서 다시 시작된 지점까지 돌아왔다. 약 한 시간 정도 되는 거리.
문학기행을 남해로 온다면
응봉산 산행을 하고 가천마을로 내려와 이렇게 걸어서 돌아오는 여정을 만들 수도 있겠다
바다를 보며 걷는 기분. 유월의 땡볕을 마음껏 느끼며
기진맥진해 보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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