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기록
노트 군데군데 뭔가 써 놓았다
무슨 생각이 있어서 쓴 것은 아니다
목적도 없고 결과를 바라지도 않는 문장
그 시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추측 할 수도 없다
뱀이라고 썼다가
말이라고 썼다가
갑자기 바다라고 써 놓았다
아내가 뱀띠라는 것은 알겠는데
말은 뛰어다니는 말인지
의사소통을 위한 말인지
알 수가 없고
뜬금없는 바다의 출연은 더욱 뜬금없는 일이었다
먼 옛날의 기억은 편집되었어도 선명하기만 한데
가까운 날의 일들은 눈보라에 휩싸인 듯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다
내 모든 기억의 기록은
내가 살아 왔던 날들의 기록인지
다만, 생각의 기록인지 분간할 수 없다
그래도 계속 뜬금없는 말들을 써 나가는 것은
문득 펼쳐 본 페이지에서 발견한 낱말이
내 기억의 기록이라고 믿으며
안도하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먼 하늘의 구름이 자꾸 모양을 바꾸어 나가는 것처럼
뜬금없는 나를 뜬금없이 쳐다보는 것이
나를 편안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