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87
하염없이 나뭇잎을 쓸고 있는 사람들
나뭇잎 다 떨어지고
모두 쓸어낸 다음에
눈동자는 하늘을 향해 공허하다
쓸어내고 쓸어낸 만큼 세월은 흘러
문득 군인이 되어있는 아들이 낯설다
몇 번 휴가를 나오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 아이가 되고
나뭇잎 몇 번 더 쓸고 나면
아이의 아비가 되겠지
아이가 아이의 아비가 되면
아이를 벗어나 해마다 나뭇잎을 쓸며
하늘을 향해 공허한 눈동자를 껌벅이겠지
다시 시작해야 할 날은 보이지 않고
반복되는 날들만 눈앞에 아른거리고
인생은 그저
나뭇잎을 쓸다가
빗자루 다 닳아빠진 줄도 모르고
문득 어른이 되어있는 아이를 발견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