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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흔적

가야산 눈구경(2017-2-1)

by 1004들꽃 2017. 2. 1.


막연하게 걷고 싶을 때가 있다

목적 없이 그저 일상을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럴 때는 그냥 나서야 한다

그냥 나서는 것이 버릇이 될 때까지

그 많은 나섦이 이제 버릇이 되어 간다.

되어 간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직도 버릇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제쯤에야 버릇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결코 달성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버릇은 저절로 익고 굳어져서 나오는 행동일 것인데

아무리 작정을 해도 저절로 산에 가기는 어려운 일이다

토요일 아침마다 몽롱한 정신을 일깨우고 결심하고 결심하여 집을 나선다

물론 누구에게도 결심한다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누구도 내가 결심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차를 운전하며 닿을 수 없는 아득한 풍경을 보고 싶고

맛집을 찾아 헤매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산으로 향한다

마음 깊은 곳에 최면을 걸고

막연하게 걷고 싶을 때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을 버릇이라고 하자

그 버릇으로 인하여 하고 싶지 않았던 움직임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렇게 쓸 수가 있는 것이다

막연하게 걷고 싶을 때가 있다

목적 없이 그저 일상을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는 것이다

사실 산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자연으로 둘러싸인 것이 아니라

자연을 내려다보면서 전체적인 풍광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마음이 편해진다 아늑해진다

어쩌면 나서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나서서 자연 속에 있으면 좋은데 나서는 것을 결심하는 것이 어렵다

그것이 버릇으로 굳어지지 않는 이유다

방바닥에 등을 대고 한없이 천장을 바라보는 일보다

나무와 흙과 돌과 하늘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많은 사람들이 비가 오기 때문에 나서기를 꺼려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비가 오면 무조건 나서야 한다

특히 비가 오는 날 노고단은 절경을 피워낸다

그 외에도 비가 오는 날은 세상의 모든 풍경이 아름다워진다

그런 이미지를 마음에 각인시킨다면 어쩌면 버릇이 될 수도 있겠다

맑은 날은 맑아서 좋고

흐린 날은 흐려서 좋고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와서 좋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좋고

아무런 일도 없는 날은 아무 일 없어서 좋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좋다

날씨가 추운 날 상고대가 피어난 산의 풍경에 묻혀

스스로 풍경이 되는 일은 또 어떤가

순간 산의 색깔이 푸르스름하게 되는 장면은

겨울왕국으로의 순간이동을 경험하게 해 준다

바람도 멈춘 시간

나무도 사람도 멈춰 서서 한 장의 사진이 된다

겨울 영상


바람 한 점 없는 겨울 한낮
눈부신 태양 아래에서도
어깨를 움츠리고
바쁘게 다그치는 걸음걸음
창가에 선 사람은 입김을 불어
보고 싶은 사람 이름을 적는다
문득 쳐다보인 은행나무엔
까치집만 덩그러니 걸려있고
나뭇가지 사이로 스민 하늘
그냥 눈물겹다
게양대에 축 늘어져 얼어붙은 깃발
움직이지 않는다
한 살 더해서 설레던 사람
한 살 더해서 서러운 사람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다 보내고
섣달그믐날 달도 없는 밤에
눈썹이 하얗도록 앉아 있다

흔적


어느새 낙엽지고
바람의 흔적만 남아
긴 겨울은 아득할 뿐이다
이름뿐인 나뭇잎 쓸어버리고
가지마다 새겨진 흔적으로
가야할 길을 찾는다
떨어진 낙엽은
돌이킬 수 없어
산산이 부서져 흩어져가고
아득한 기억의 저편
건널 수 없는 강 앞에서
다만, 통곡할 뿐이다
지나간 기억의 발자취는
강물에 흘러 떠내려가고
기억과 기억은 연결되지 않는다
상처를 기억할 수 없는 나무는
상처 하나 없는 잎을
흔적의 기억으로 피워내는 것이다

지워진 이름


들여다보면 떠올랐던 얼굴
지워진 후에 다시 보지 않는다
이름이 없어진 것과
사람이 없어진 것은
같은 일이라고 하는 것일까
김춘수 시인은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된다고 했다
이름으로 세상은 구분되고
지워진 이름으로는
누구에게도 다가갈 수 없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살아갈 수 있다
매일 이름을 지운다
그 누군가의 명부에 씌어 있을
나의 이름을 지운다
그의 이름을 지운다
이름이 없어진 후에
비로소 자유를 찾을 수 있다
누구에게도 떠오르지 않을 자유


풍경


주사기에 마음을 담아 그의 심장에 비수처럼 꽂았으면
내 마음의 반이라도 전할 수 있었을까
기다림은 오직 그 사람을 위해 있었고
어쩌면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내가 태어난 것만 같고
그 사람의 걸음걸이를 흉내내며
겸연쩍어하던 나날은 대책 없이 지나갔다

그 사람 생각 때문에 늦잠을 자
그 사람이 지나가는 길목을 지키지 못했던 날에는
비어있는 길을 하염없이 걷는 것밖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 속에서만 그 사람은 그 사람이었고
그 사람에게 나는 그저 스쳐가는 풍경이었다

그 사람이 나를 생각할 아무런 이유도
찾지 못한 채

혼자서 술을 마시며 혼자서 그와 이야기했고
시를 쓰며 그 사람을 생각했고
시에서 그 사람과 함께 걸었다

무심코 그 사람의 옷차림까지 닮아가던 날
나는 혼자서 얼마나 더 걸어야 할까를 생각했다

내 마음이 그 사람에게 아무것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때
세상은 비로소 미친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미친 나날들은 나의 무의식에 침전되었다가
허공을 헤맬 때 불쑥 불쑥 튀어 나왔고

과거와 현재는 뒤죽박죽 되었다

버릴 수 없었던 나날들은 버려지지 않았고

등에 지고 가야할 버릴 수 없는 그 사람은
언제까지나 데리고 다닐 나의 풍경이 되었다

지워진 이름


들여다보면 떠올랐던 얼굴
지워진 후에 다시 보지 않는다
이름이 없어진 것과
사람이 없어진 것은
같은 일이라고 하는 것일까
김춘수 시인은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된다고 했다
이름으로 세상은 구분되고
지워진 이름으로는
누구에게도 다가갈 수 없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살아갈 수 있다
매일 이름을 지운다
그 누군가의 명부에 씌어 있을
나의 이름을 지운다
그의 이름을 지운다
이름이 없어진 후에
비로소 자유를 찾을 수 있다
누구에게도 떠오르지 않을 자유

흉터


오래된 흉터를 들여다본다
피부색과 달리 두드러져 보이는 곳
피부세포가 바뀌는 만큼
흉터도 재생되어 선명하다
가슴 속에는
언제 새겨졌는지
알 수 없는 흉터가
보이지도 않는 흉터가
걸을 때마다 가슴을 짓누른다
나이가 들수록 흉터가 많아져서
매일 아프다
상처 준만큼 상처도 받아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눈물이다
다시 살아낼 수 없는 날들이
살아 가야할 나날들이
모두 눈물이다

바람의 기억


바람이 불 때마다
내 이름이 실려 올까
처량한 낮달이 기울 때
나를 불러 주는 사람 있을까
기다림도 없는 하루가 지나가고
그리움도 없이 그냥 지나가고
별빛 없는 적막 속에서도
별은 스쳐 가는데
누구도 그리워지지 않고
하루는 흔적도 없이 또 그렇게
짙어가는 나뭇가지는
슬쩍 봄을 치워 버리고
마파람 끈끈해질 무렵에는
하늘에서도 뚝뚝
눈물이 흐를 것 같다
꽃을 피우며 흘린 눈물과
지는 꽃의 기억이
바람에 묻어서 오는데
아무도 그립지 않고
아무도 찾는 이 없는 하루가
그리움도 없이 그냥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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