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인사가 지은 의령중학교 교가에 대하여
교사 이순일<2012년 02월 04일 [의령신문] >
나는 의령지역에서 18년, 의령중학교에서만 10년째 근무하고 있는 교사다. 앞으로 남은 연한 5년도 가능하면 의령에서 근무하다가 퇴임할 계획이었으나 지역근무 연한제로 말미암아 2012년도에는 안타깝게도 다른 지역으로 떠나게 되었다. 이렇게 나의 이력을 밝히는 까닭은 의령지역 사회와 학교 교육에 대한 사랑으로 이 글을 쓰는 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이런 연유로 의령중학교 교가에 대하여 문제 제기를 한다.
의령중학교 교가를 국문학계에서 이름이 높은 최남선 선생이 작사하고 우리나라 음악계에 이름이 높은 현제명 선생이 작곡을 한 연유는 이러하다.
1945년 5월 11일 현재, 학교가 농업 전수과 2년제일 때는 일본인 마쓰다 교장이 있었다. 그 후 일제 말기까지 초등 출신의 최복갑 교장서리가 있었다.
해방되고 초대 교장으로 김해 출신의 김병곤 교장이 왔다.
이 분은 일본 메이지대학교 사학과 출신인데, 최남선 선생과 유학 시절부터 친면이 있어 교가 작사를 부탁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최남선 선생이 현제명 선생에게 작곡을 부탁했으리라 추측한다. (2011.10.박희구 전 의령중학교장 증언)
두 분은 한국 역사와 문학계에서 또 음악계에서 큰 업적을 남긴 것은 분명하지만 어려운 시기에 나라를 빼앗은 일본제국주의에 친일(부일)한 사실도 분명하다.
최남선 선생은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3.1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옥고를 치루었으나 그 10년 뒤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위원으로 참가하고 일본의 괴뢰국 만주건국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이광수와 더불어 일본 메이지 대학에서 조선청년들이 일본을 위하여 학도병으로 출전할 것을 강연하였다.
광복 후 첫 출범한 정부에서 반민족행위 특별위원법에 의해 감옥에 갇혔으므로 그의 친일행위는 명백하다.
현제명 선생은 조선음악협회의 음악회에서 자작곡 <후지산을 바라보며>를 발표했으며 음악 보국을 목적으로 하는 <경성후생실내악단>을 결성하고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조선인 징병실시를 위한 야외음악의 밤에서 <항공일본의 노래>와 <대일본의 노래>를 불렸다. (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 2009)
2002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파 708인에도 두 분이 모두 들어 있다.
현재 우리 의령군은 인구도 적고 현재의 군세는 작지만 문화적 자존심과 애향심은 대단하다.
배출한 걸출한 인물도 많다. 그 자존심과 애향심과 인물은 어디서 나오는가?
단언컨대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전통에서 나온다고 확신한다.
내외 의령군민을 대동 통합시키는 의령군의 가장 큰 행사는 의병제이다. 일반적으로 큰 잔치의 기원은 제사에 두는데 의병제 행사도 충익사에서 18장군을 위시하여 의병창의한 영령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우리 의령군민이 가장 큰 자랑으로 삼는 것은 의병창의 정신이다. 의병제전에서도 보면 거리마다 <만세에 전할 전국 최초의 임란 의병창의 정신>을 주요 내용으로 한 현수막이 물결을 이룬다.
이런 전통 속에서 백산 안희제 선생, 국어 학자 고루 이극로 선생, 조선어 사전 편찬에 크게 기여한 남저 이우식 선생 등이 나왔다.
이리하여 우리 의령지역 학교에서는 선조들의 창의 정신과 항일정신을 계승하는 교육을 해 오고 있다. 의령지역 학교에서는 학생회를 호칭할 때도 예를 들면
<의병 의령중학교 학생회>라고 부르고 있다.
의령중학교 체육관도 홍의 곽재우 장군을 기념하여 홍의관(紅衣館)으로 부른다.
의령군에서는 전체 의령군민의 이름으로 의병제전 기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줄 것을 국회에 청원해서 6월 1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여 2011년부터 기념해 오고 있다.
그런데 의령중학교 교가 작사, 작곡자의 친일(부일) 민족 반역행위는 홍의 곽재우 장군의 임란 의병창의정신과 백산 안희제 선생의 항일 정신에 뚜렷하게 모순되는 일이다.
학교에서 의식의 노래인 교가를 작사 작곡한 사람의 행적이 학생들이 구체적으로 배우는 조상의 얼과 어긋나는 이 모순을 어찌할 것인가?
가사의 내용과 곡은 그런대로 무난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면 가사를 한번 살펴보자.
1절
구름에 솟아난 자굴산 끝도/ 오르고 오르면 사무치나니
거룩한 인격과 어려운 공부/ 닦아서 못 이룰 무엇 있으리
2절
솥바위 스치는 잔잔한 물도/ 흐르고 흐르면 바다 가나니
이 나라 이 팔뚝 힘을 올리면/ 어떠한 큰 일도 감당하리라
가사 내용은 보기에 따라 훌륭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초대 교장 선생님은 지은이의 이름을 높이 사서 대대로 학생들의 모범으로 삼고자 교가의 작사를 부탁했을 것이다.
그런데 가사의 내용을 가만히 살피면 의병창의 정신이나 항일 애국애족 정신에 대한 단어가 하나도 없다.
우연일까? 이 가사를 지은 때는 1945-1946년대, 온 세상이 나라를 찾은 기쁨에 들끓고 있을 때가 아닌가? 의병창의의 고장 의령의 중심학교 교가에 애국애족 정신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지은이의 부끄러운 삶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스스로 언짢고 학생들에게 이 노래를 불리는 것이 교사로서 부끄럽다.
지은이의 행적을 잘 아는 학생들이라면 입학식이나 졸업식 때마다 이 노래를 부르고 싶을까? 이런 찜찜한 느낌을 주는 노래를 의식 때마다 학생들에게 부르게 하는 것은 어른들(기성세대)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하여 지역 교육계와 학부모, 지역 인사, 동문들의 깊은 헤아림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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