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죽은 닭들은 서로 몸이 뒤엉키어 죽은 검은 닭들의 시체를 밟고 홀로 선 흰 닭, 그건 그냥 가볍게 눈요기로 즐겨도 좋은 부엌의 정물이 아니었다. 그건 인간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짐승보다 못한 만행, 즉 동종의 인류에 대한 학살을 고발하는 역사화였다.(중략)
전쟁의 참화를 주제로 한 고야의 어느 대작보다도 이 자그마한 닭 그림이 속이 메스꺼울 정도로 피비린내를 풍기는 것은 무엇인가. 캔바스엔 피가 한방울도 묻어있지 않은데 말이다. 그것은 은유의 힘이 아닌가 싶다. 직접 들이대는 것보다 빗댄 암시가 때로는 더 강렬하고 폭넓은 상상의 여지를 남길 수도 있다.
검은 닭들을 짓밟고 선 흰 닭은 에스빠냐의 민중을 살육했던 프랑스 군인일 수도 있고, 국민을 수탈하는 에스빠냐의 전제군주일 수도 있다. 인류가 존속하는 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세계 어느 곳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 인간이 인간에게, 인간이 동물에게, 그리고 나아가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가하는 - 부당한 폭력의 증거로서 읽히는 것이다. 흰 닭과 검은 닭, 밟는 자와 밟히는 자...
그 섬뜩한 명암대비가 없었다면 이 작품은 평범한 정물화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정물화와 역사화의 차이는 그림의 소재에 달린 것이 아니다. 요컨대 화가가 사물을 어떤 눈으로 보았느냐, 그리고 자신이 본 것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보여 주느냐에 달려있다.(최영미-"시대의 우울" 중에서)
[고야, 죽은 닭들, 18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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