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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흔적

자굴산, 가을의 문턱

by 1004들꽃 2012. 9. 2.

2012년 9월 2일. 가을의 문턱에 선 자굴산. 아직도 후텁지근한 기운은 남아있었으나 가을은 어느새 산을 뒤덮을 것이다.

 태풍이 지나간 후 아직 그 후유증이 남아 있는지 산은 안개를 품고 있었다. 자굴산의 신녀가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드러누워 있는 형상이다. 긴 잠에서 깨어나 다시 사람들을 반기는 날.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산으로 들어올 것이다.

 구름은 아무래도 제일 높은 곳에 걸려서 요동을 치는 모양이다. 놓아주지 않으려는 것과 놓여나려하는 것들은 서로 뒤엉켜서 제각각의  형상을 만들어 낸다. 아래로 깔리는가 하면 위로 솟구치기도 한다. 그 방향을 종잡을 수 없다.

 벌레들에게 뜯겨 색깔을 잃어버리고 폐허처럼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다. 어떻게든 가을로 가려는 몸부림은 아닌가. 

 성급하게 물든 나뭇잎은 지난 태풍에 잃어버린 친구를 생각하며 눈물짓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 슬픔이 하도 깊어서 피눈물을 흘리는 것이라고. 

 잠시 쉬어가는 나그네를 위로하려는지 다람쥐 한 마리 주변에서 서성거린다. 이제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가을의 문턱에서 부지런히 물어 날라야하는 것들을 부지런히 찾아야 하겠지

 바람덤에서 보면 멀리 한우산이 보인다. 삐죽이 솟은 정자는 카메라에 보이지 않는다.

 생각과는 달리 자굴산 정상은 깨끗했다. 맑은 가을하늘을 이고 표지석은 햇빛에 빛났다. 구름과 표지석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그림 속에서 하나가 되는 풍경으로 자리 잡는다.

 한 번도 찍어보지 않은 풍경을 찍어본다. 그저 스쳐지나가기만 했던 곳. 저 멀리 산들은 카메라 렌즈 속에서 사위어 간다. 눈과 렌즈가 읽을 수 있는 것들은 서로 달라서 렌즈는 사람의 눈이 보지 못하는 것을 렌즈의 눈으로 읽을 수 있고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을 렌즈의 눈은 읽을 수 없는 모양이다. 

 멀어져 가는 산들을 더 멀리 보내버리는 렌즈의 속성이 안타깝기까지 하고...

 산불감시초소. 그 아래 솟아오른 바위는 무심히 지나갈 때 발견할 수 없는 바위다. 나무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기에 무심히 지나가는 나그네들은 바위에서 도모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발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위쪽으로 가까이 간다. 여전히 나무에 가려져 그 형상을 온전하게 볼 수 없다.

 가까이 다가가면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여전히 소원성취탑은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에 유효한 모양이다.

 반대편으로 가서 내려다보면 어떤 동물의 머리모양을 이루고 있다.

 바위 위에 올라가 먼 산들을 보면 닿을 수 없는 저 먼 곳까지 볼 수 있다. 

 그리고 자굴산 쪽을 보면 자굴산 정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래쪽으로는 칠곡면의 마을 전경을 볼 수 있고

 뒤를 돌아보면 가례면 양성마을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다시 자굴산 정상의 오른쪽을 보면 한우산에 설치해 놓은 정자를 볼 수 있다. 이렇듯 이 바위에서 쳐다보면 자굴산을 중심으로 한 사방의 전경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바위 위쪽을 보면 약간 경사가 졌지만 편편하게 다듬어져 있어 명상을 하기에 좋은 장소다. 문헌에 남명 선생이 자굴산에서 수양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나 그 장소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아니 찾을 수는 있겠지만 기록에 없으니 찾아도 그 장소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산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바위의 이런 조건들은 바로 남명 선생이 수양했다는 명경대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느 누군가 어떤 장소를 명경대라고 명명할 지 알 수는 없지만 내 마음 속의 명경대는 바로 이 바위라고 할 수 있을 뿐이다.
산상소류지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는 가끔 들리지만 그들의 모습은 볼 수 없다. 한참을 멍하니 앉았다가 다시 길을 걷는다.

내려오는 길에 새로 피어난것같은 꽃이 걷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든다. 가을을 맞이하는 꽃은 아닌가. 자굴산의 가을은 그 자리에서 사람들을 기다릴 것이다. 언제 한 번 저 명경대라고 나 스스로 명명한 곳에서 오랫동안 앉아 시 한 편을 완성한다면 멋진 일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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