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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영화]러브레터 / 이와이 슌지 감독

by 1004들꽃 2018. 1. 25.


러브레터 / 이와이 슌지 감독


1995년 제작해 우리나라에 1999년 개봉했고 2017년 12월 국내에 다시 개봉한 이와이 슌지 감독, 일본의 국민 여배우 나카야마 미호 주연의 <러브레터>. 영화를 본 사람이면 첫 장면에서 검정색 코트를 입고 눈밭에 누워 있는 눈보다도 더 희게 느껴지는 얼굴의 여자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기침을 하며 눈을 뜨고 일어서 백색의 눈밭에서 눈을 맞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장면. 바로 그 장면이 영화 포스트를 가득 채운다.


뭔가 간절히 원하면서도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것 같은, 아무 목소리도 없으나 많은 목소리가 담겨 있는 것 같은 장면. 그리고 눈길을 걸어서 마을로 내려가면서 점점 작아지며 아련해지는 모습. 계속 붙잡고 싶은 장면이다. 그러면서 눈 덮인 도시의 모습이 점점 시야로 들어오게 되고, 다음 장면으로 눈이 내리는 날 장례식 장면이 이어진다. 와타나베 히로코의 연인이었던 후치이 이츠키의 장례식이다.


세월은 흘러 장례를 마친지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하는 약혼녀였던 히로코는 이츠키의 집에서 우연하게 중학교 앨범을 보게 된다.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의 주소가 앨범에 기록되어 있다. 히로코는 팔에 그 주소를 적는다. 하지만 그 주소는 동명이인으로 같은 반에 있었던 여학생 이츠키의 주소였다.


남학생 이츠키의 집은 도로공사로 편입되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하늘나라로 가 소식을 전할 수 없는, 아직도 잊지 못하는 첫사랑에게 안부를 전할 수 있을까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답장을 받을 생각 없이 무심코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 도착하게 된다.


히로코는 이츠키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두 사람이 중학교 시절 같은 이름을 가진 동창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남학생 이츠키와 같은 반이면서 도서위원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편지로 주고받으면서 알아가게 된다.


히로코는 이츠키를 만나기 위해 그 옛날 소년 이츠키가 중학교 시절을 보냈던 오타루로 간다. 마침 이츠키는 독감으로 병원에 갔고 집 앞에서 기다리다 만나지 못한 히로코는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는다. 돌아오는 길에 이츠키를 태워주고 돌아오던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에게 조금 전에 태워줬던 사람과 많이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병원에서 돌아온 이츠키는 히로코가 다녀갔다는 사실을 알고 자전거를 타고 따라가 보았지만 스칠 듯 만날 듯 군중 속으로 휩싸여 버린 이츠키와 히로코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한 번 스쳐가 버린 인연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둘은 만나지 못하게 한다.


히로코는 이츠키의 어머니에게 앨범에 있는 여학생 이츠키가 자기와 많이 닮았다는 대답을 듣게 되고, 이츠키의 친구였던 아키바 시게루와 사귀고 있던 중 이츠키는 어떤 여자에게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히로코를 만난 순간 첫눈에 반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히로코는 다만 이츠키와 자기가 닮았기 때문에 사귀게 되었다는 사실에 실망하게 되고 자신은 배신을 당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여성 이츠키는 히로코의 부탁으로 소년 이츠키가 다니던 학교전경을 찍으러 학교를 방문했다가 학생들이 도서대출 카드에 이츠키의 이름을 찾는 게임이 유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놀랍고도 의아해 한다. 거기서 만난 선생님에게 이츠키의 조난 소식도 듣게 된다.


이츠키는 히로코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남학생 이츠키가 읽지도 않는 책의 도서카드에 자신의 이름을 적는 것을 좋아했다고 이야기 하는데, 정착 히로코는 편지에서 <과연 도서카드에 적힌 이츠키라는 이름이 자신의 이름이었을까요?>라고 되묻는다.


부친상을 당한 여학생 이츠키는 개학을 했는데도 학교에 가지 못하고 가사를 도우고 있었는데 문득 남학생 이츠키가 집으로 찾아와 책을 대신 반납해 달라고 한다. 일주일 후 학교에 간 이츠키는 남학생 이츠키가 전학을 가고 없다는 것을 알고 서운해 하며 반납한 책을 살펴보지도 않고 도서관 열람실의 책꽂이에 꽂아버리고 만다. 세월은 다시 현재로 돌아와 도서카드의 이츠키 이름 찾기 게임을 하던 후배들이 이츠키의 집에 방문해 전해주는 책의 도서카드 뒷면에 연필로 그려진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진심으로 좋아했던 사람에게 좋아한다는 말 한 마디 못하고 떠났던 소년 이츠키는 이츠키와 닮은 히로코에게 한 눈에 반했고 히로코 또한 이츠키의 사랑은 자신이 아니라 소녀 이츠키였다는 사실을 아련하게 깨닫는 슬픈 사랑 이야기.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러브레터를 주고받던 중 잊고 있었던 기억을 소환해내고 남학생 이츠키가 자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학생 이츠키. 이츠키를 잊기 위한 방법으로 이츠키가 조난당한 산을 향해 온 몸으로 외치는 히로코. 눈밭에서 <오겡끼 데스까. 겡끼 데스>라고 외치는 모습이 여운이 되어 오래도록 남아 있다.


러브레터는 아마도 성인이 된 이츠키와 히로코가 주고받았던 편지가 아니라 도서카드에 적어 놓은 <이츠키>라는 이름일 것이다. 아마도 100통에 육박했을 것 같고 마지막 러브레터는 도서카드의 뒷면에 그려 놓았던 그녀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미 만날 수도 없는 사람.


사랑한다거나, 좋아한다거나, 만나고 싶다든가, 매일 생각난다든지 하는 아무런 말도 필요하지 않았던 순정만화 속의 두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의 자전거 거치대에서 캄캄할 때까지 잘못 전달된 채점시험지를 바꾸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던 소녀 이츠코. 캄캄한 밤에 자전거 라이트를 밝히기 위해 페달을 열심히 돌리는 여학생과 그 불빛으로 시험지를 들여다보는 남학생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웃음이 나오면서도 가슴 저 안쪽에서부터 상큼해져 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누군가를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거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짝사랑처럼 혼자서만 생각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실은 둘 다 같은 생각일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둘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헤어질 확률이 높다. 그래서 현실은 매정하다고 해야 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번 스쳐 지나간 인연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아쉬움을 위로해 줄 사람들이 바로 작가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있을 법한 이야기. 이루어졌으면 좋았을 이야기들을 섞어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내는 사람.


영화에서는 한 사람이 먼 길을 떠나버렸기 때문에 영원히 알지 못할 운명이었지만 그것이 아쉬웠는지 작가는 편지를 매개로, 한 여성의 지나간 추억을 소환해 낸다. 그녀는 그때 그것이 사랑이었는지 몰랐지만 기억과 현재를 연결시키면서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알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런 일들과 마주치면 그저 먹먹해야 하는 것처럼 마지막 장면을 오래오래 끌어안고 싶어진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가슴 한편에 미소가 떠오르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득한 곳으로부터 밀려와 손에 잡힐 듯 말 듯 실체를 알 수 없는 안타까움 때문에 긴 숨을 내 쉬어야만 할 것 같다. 검은 화면에 흰 글씨로 된 일본어가 아래에서 위로 끝도 없이 올라간다. 그것은 마치 과거의 기억을 소환해내는 장치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