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아랫도리 / 박완호
시인이라면 누구나 아랫도리 하나쯤 더 지니고 산다. 나도 제 멋대로 발끈발끈하는 녀석 하나 더 갖고 있다. 애인과 사랑을 나누려 할 때는 기척 없어 날 무안하게 하더니, 돌멩이에 짓눌려 있던 상반신을 가까스로 일으켜 세우는 키 작은 풀들, 모란시장 한구석 파리 날리는 가판대에 앉아 사람들의 발길을 애타게 끌어당기는 늙은 여자, 혹은 영혼을 저당 잡힌 허깨비들과 맞닥뜨리는 순간 대가리 빳빳하게 세우는 놈. 너 오래 살아라. 아랫도리가 죽은 시인은 이미 시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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