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기 위해 집을 나선다. 어디든 걷지 않으면 휴일을 잘 보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막연한 강박관념이 몸의 구석구석까지 배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출처가 어디인지 알 수도 없고, 어쩌면 끝내 그 출처를 알아내지 못할 것 같다.
어쨌든 자연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내 몸의 일부가 자연이 되는 것이어서
찌든 생활로부터 잠시라도 벗어나는 희열을 안겨다 준다
이번에는 백무동으로 정했다. 장터목까지 가는 것도 생각해 보았지만
세석길을 다시 걸어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했다.
물이 풍부하여 물소리와 함께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소리는 최소한이긴 하지만 머리 속에 틀어박혀 있는 잡념을 희석시키는 역할을 한다
어디서 저렇게 물이 나오는지 머리로 생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다만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이 내는 소리에 감탄할 뿐이다.
그 물소리는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일까?
생각이 생각을 만들고 내 생각을 물의 생각인 것처럼 착각해 버린다.
나무뿌리를 벗어나 흙으로 흐르고 돌과 바위를 지나 모이고 모이는 곳
물소리는 다시 물들을 부르고 모인 물들은 더 큰 소리를 내면서 주변의 물들을 불러 모은다.
도를 닦다가 여인의 유혹에 못이겨 수도를 포기하고
"나는 가네" 하면서 떠났다고 하여 가내소 폭포라고 한단다.
하얗게 부서지면서 떨어지는 폭포 아래 모여 있는 물들은 마치 저 먼 바다의 색깔을 미리부터 상상하기라도 하는 듯
짙푸른 색깔을 만들어 내고 바다로 가서 다시 그 기억을 끄집어 내는 모양이다.
오층폭포
몇 년 전 여름.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이곳에서 씻은 적이 있다
물 속에 들어 앉아 언제까지나 있을 줄 알았지만
단지 그것은 생각일 뿐 15초를 넘기지 못하고 물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뼈가 부서질 것 같은 통증때문에 다시 물 속에 몸을 담그지 못했다.
편안했던 길은 끝나고 가파른 길이 사람들을 맞는다
인생의 황혼기와도 같이 쉬어가는 시간과 횟수가 많아지고
사람들도 점점 지쳐간다
그만 돌아갈까 생각하다가 계속 걷는다
겨울에 오면 이곳은 빙벽을 이룰 것 같다
그 모습도 장관이겠다
하지만 지난 겨울에 첫나들이 폭포에서부터 길은 통제 되었다
어쩌면 장터목으로 가서 세석을 통과해 내려올 수는 있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오르는 길을 막았으면 내려오는 길도 당연히 막지 않았을까?
가파른 길목에 자리잡고 있는 나무는 그 뿌리가 바위를 감싸고 있다
도대체 저 뿌리로 영양분은 어디에서 뽑아 올리는 것일까?
바위의 틈새를 살펴보니 그 바위조차 속은 텅 비어 있었다.
뿌리는 물을 찾아 사방으로 뻗어나가 저 큰 몸체를 지탱하면서
양분을 공급한다. 그 힘으로 저 바위를 움켜지고 있는 모양이다
대피소까지는 700m남았다
잠시 쉬는 동안 지나가는 사람들이 약 2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내려왔는데 겨우 700m밖에 오지 않았다고 투덜거린다
급경사를 올라야하는 사람은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것일까
어쨌든 시간은 우리를 목적지까지 도달시켜 줄 것이고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한발한발 걷는 수밖에 없다
운무에 뒤덮인 대피소가 시야에 들어온다
멀리서 보이는 모습이 아름답다
구상나무가 많이 보인다
일부러 심은 것인지 사람 키보다 약간 큰 것들도 보이고
1m 정도 되는 것들도 많다
서쪽에서 날아오는 운무는 산을 넘어 동쪽으로 날아간다
잠깐씩 운무가 벗겨져 푸른 산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고
이내 흰 연기에 휩싸인듯 산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진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현상은 반복되었을까
그 모습들을 쳐다보는 것만으로 신선이 된 기분이다
철쭉을 보기 위해 무작정 찾아왔던 약 25년 전의 풍경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시기가 늦었을까. 연분홍 꽃들은 시들어가고 있었고
천왕봉을 넘어 이곳에 잠시 머물다가 시든꽃을 뒤에 두고 거림으로 내려왔다
그 옛날의 발자취를 찾아 이렇게 와 보지만
이젠 점점 다리가 무거워지고 오랜 시간동안 걷지 못한다
하지만 어쩌겠나. 두 다리를 내딛을 수 있을 때까지 걸을 수밖에.
한창 젊은 시절 대원사에서 천왕봉을 찾아 길을 나섰을 때 70대 노부부를 만났었다.
그때의 충격으로 지금도 산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나의 지리산을 향한 행로는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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